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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100] 제주, 그리고 바


제주는 너무 크다. 너무 커서 어디를 가야할지 뭘 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엉거주춤 다녔다. 낮에 비하면 밤은 훨씬 편하다. 바투어 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날은 <허클베리핀> 바를 갔다. 제주에서 오래된 바로 숙소에서도 멀지 않았다. 바에 앉으면 백바에 어떤 위스키가 있는지 스캔부터 한다. 먹어보지 않은 위스키 몇개가 보인다. 그 중에서 탈리스커 57 north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 입맛에 딱 맞지는 않았다. 도수가 높아서 날카로웠으며 피트는 은은하고 쿰쿰했다. 까뮤 나폴레옹 구형과 비스킷 꼬냑 두 개도 나란히 두고 비교 시음해본다. 꼬냑의 등급은 보통 4단계(VS-VSOP-Napoleon-XO)인데 까뮤보단 비스킷이 한 등급 높은 보틀이었다. 까뮤가 신선한 포도의 향이라면 비스킷은 숙성되고 농익은 포도향이 물씬난다. 등급이 달라서인건지 확실히 비스킷이 맛있다. 짙고 부드러우며 새콤하면서도 묵직하다. 입 안을 감싸는 은은한 맛에 매료된다. 까뮤는 나무맛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약간 떫은 맛과 함께 비누 맛이 어우러지며 연하고 밍밍하다. 아무래도 비교해서 먹어서 상대적으로 별로인 맛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까뮤는 안주와 함께 먹었을 때 훨씬 더 맛의 가능성이 터졌다. 젊은 시절 서울에서 바텐더를 하다가 제과 제빵을 배우고 제주도의 유명 쇼콜리에 밑에서 일하기 위해 훌쩍 제주도에 내려왔다가 바를 차렸다는 사장님의 스토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빵을 하며 효모를 알고 술을 더 잘 알게되었어요. 빵도 술도 결국 효모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니까요."

바 곳곳에는 수제 리몬첼리나 수제 초콜릿 술 등이 눈에 띄었다. 낮에는 빵을 팔고 저녁에는 바를 하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빵은 중단하신 상태고 곧 다시 하실 예정이라고. 9시 쯤 가서 11시에 문을 닫으니 시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다음 날 다른 바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허클베리핀으로 향했다. 어제는 위스키를 마셨으니 오늘은 칵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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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기주로 한 술들을 부탁드리니 사이드 카와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시그니쳐 칵테일 월광을 만들어주었다. 꼬냑과 직접 만든 레몬시럽이 들어간 사이드카도 맛있었지만 월광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전혀 거부감 없이 맛있게 넘어간다. 국내에서 사과로 만든 문경바람으로 만든 월광은 살구씨로 만든 술 디사론노와 아니스로 만든 압생트가 들어간다고. 디사론노의 단맛이 너무 강해서 위스키를 섞은 갓파더 외에는 잘 먹지 않는데 그 부담스러웠던 단맛이 이토록 은은할수있다니! 사과의 상큼함과 아니스의 독특함, 달짝지근하며 특유의 향취가 있는 디사론노가 섞여 그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 조화로운 맛이 완성된다. 나의 최애 칵테일 올드패션드와 혼자 자주 만들어 먹었지만 바에서 먹어본 적 없는 하일랜드 쿨러도 마셔봤다. 올드패션드는 비터가 많이 들어가 강렬하니 입에 잘맞았고 수제 진저 에일로 만든 하일랜드 쿨러도 시원하니 맛좋았다.
"바는 미용실과 비슷해요. 처음 가는 미용실에서 정확히 원하는 스타일을 설명하기 어렵잖아요. 그렇게 몇 번을 가서 맞춰가면서 스타일을 맞추는거죠."
"그러고보니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세요 라는 주문은 칵테일을 맛있게 만들어 달라는 말과 다를 게 없겠네요."
"어제 오시고 이틀 연속 오셔서 원하시는 스타일이 좀 파악이 돼서 올드패션드에는 비터를 많이 넣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방금 전 훨씬 비싼데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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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날 이미 허락을 받아 N의 위스키를 가져가서 나누어도 마셨다. 사장님, 함께 바를 운영하시는 부인, 일하는 바텐더까지 그 위스키를 마음에 들어했고 사장님은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에 백바에서 이런저런 귀한 술과 직접 만든 술을 내주었다. 시가도 꺼내주시고 파이프 담배도 꺼내어서 어떻게 피는지도 알려주셨다.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파이프를 처음 본 탓에 나는 꽤 흥분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적 없어요. 너무 신기해요."

사장님이 꺼낸 페인트통같은 큰 통에는 파이프에 넣는 담뱃잎이 가득 차 있었다. 다양한 맛이 있고 고를 수 있다고. 사실 맛 자체는 특별하지 않고 연기도 시원하게 내뿜어지지 않았다. 그냥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것에 신났을 뿐이다. 갑작스럽게 펼쳐진 술꾼 대통합 한마당에 모두 신나서 목소리를 높였고 나는 칵테일을 연달아 세잔 마신 탓에 취기가 올라 "이 번 제주 여행에서 이 곳에 온 건 행운이에요. 이곳이 제일 좋아요!!" 라고 소리쳐 말했다. 정말이지 그랬다. 각 도시 당 하나씩, 사랑하는 바를 만들어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을 제주 여행의 끝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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