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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00]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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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리학자는 부두에서 이상한 그림이 조각된 '거인의 이'를 손에 넣고 이 뿌리 안쪽 면의 지도를 발견해 긴 여행을 떠난다. 스무명의 건장한 남자와 함께한 탐험을 시작했지만 열악한 환경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나가 떨어지고 용감한 사람들만 남아 고행을 이어간다. 사람의 머리를 절단 내는 기이한 습성을 가진 와족에게 원정대원들은 모조리 살육당하고 혼자 남은 지리학자는 추위와 허기를 동반자 삼아 눈덮인 산맥을 넘고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는 거인들의 묘지구나.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어!" 수많은 시련과 상실 그리고 회의 끝에 마침내 전설이 되어 버리 미지의 나라에 도착한 것입니다.

변화와 성장을 바라는 이에게 무모한 도전과 불안함, 시련은 마치 한세트와 같은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거인의 나라에 도착한 그의 행보에 진심으로 흐뭇했다. 홀로 거인의 땅을 탐구하던 그에게 살아있는 거인 아홉명이 나타난다. 거인들은 지쳐 쓰러진 그를 아이처럼 정성껏 돌봐주었고 끝없는 밤을 지새며 진실된 교류를 나누었다. 겨울이 되면 바위 오두막을 지어주고, 물과 이끼와 나무껍질로 짠 외투를 이불로 덮게했다. 200년 동안 겨우 3년만 깨어있는 거인들은 힘겨루기를 하고 바위 던지기, 높이 뛰기 시합도 하고 춤도 추고 밤이면 계절의 순환과 천체의 운행, 물과 땅과 공기와 불이 끊임없이 갈등하면서 결합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이 노래하곤 했다. 하지만 지리학자는 그런 삶이 지겨워져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어졌고 거인들은 그를 멀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티벳의 높은 고원을 건너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거인은 순금을 선물로 주며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런던으로 돌아온 지리학자는 9권의 책을 냈고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원한, 질투, 무지가 불러일으킨 이 모든 진창 구덩이를 내가 만족스러워했다고 여기지는 말아주시기를! 오히려 나는 무릇 위대한 발견자는 예나 지금이나 동시대인들의 분노와 경멸에 부딪힌다는 걸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이 모든 비난과 끝없는 논쟁은 내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 따름이었습니다. 불순하고 소소한 지식에 젖어 있는 세상 소인배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진리의 의무여. 학문의 도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협잡꾼과 세기의 발견자, 둘 다의 수식어를 받게된 지리학자는 스스로를 '위대한 발견자'라고 칭하고 소인배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게 진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거인을 찾아 떠난 그의 여정은 고독하고 위대했으며, 열 달 넘게 거인과 지내며 그는 치열하게 연구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기에 급급해서 시야가 막힌 말처럼 거세게 질주했다. 그리고 빵빵한 지원을 받아 떠난 두 번째 원정에서 아름답고 숭고한 거인 안탈라의 머리를, 작살을 맞은 다른 거인들의 사체를 맞이한다.

나는 갑자기 온갖 소란 속에서 분노와 공포와 고통에 사로잡혀 침묵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깊이를 모를 심연의 슬픔, 그 밑바닥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 너무도 익숙한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말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 속 깊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비밀로 남겨둬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비단 자연의 비밀만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할 말, 안 할 말을 가릴 것, 묻어둬야 할 비밀과 들춰야 하는 비밀을 구분할 것, 자신에게 마음 준 이를 배반하지는 않아야 할 테다. 비극적인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실린 최재천 교수의 해설의 일부를 함께 적는다.

아무리 큰 거인이라도 감싸 주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생물학자인 제 눈에는 우리도 영락없는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 왜 요즘 우린 그걸 자꾸 부정하려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거인의 몸통에 작살을 꽂으면 우리도 함께 간다는 걸 왜 모를까요? 언젠가는 저 외계에도 생명이 존재한다는 걸 밝히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 우리에게 알맞은 행성은 이 지구 하나뿐일 겁니다. 거인의 비밀들은 계속 조심스레 들춰 봐야겠지만 그들을 배신하는 일일랑 하지 않아야 우리 스스로가 '시간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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