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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임금이 사도세자에게 쓴 고경중마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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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본성은 하늘로부터 받아 타고난 것이다. 옛적 추(鄒)나라 성인이신 『맹자(孟子)』께서 평소에 본성이 선함을 가르치셨는데 죽은 듯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음은 마음에 바탕이고 감응하여 통하게 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라 하셨다. 훌륭하신 저 성인께서는 타고나면서 저절로 그러함을 아셨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워도 알지 못하는 구나. 한 진리가 나에게 들어 있으니 그것을 어찌 밖에서 찾을 것일까마는 그들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욕심임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은 원숭이 같고 뜻(意)은 말과 같아서 바깥으로 치달리니 그것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대답은 정성(誠)과 공경(敬)이다. 이 한권의 책은 선대의 훌륭한 현인이 편집한 것인데 어째서 거울 ‘경(鏡)’ 글자로 이름을 붙였을까? 생각해 볼수록 그 뜻이 깊다. 거울은 본래 밝은 것인데 그것을 어둡게 덮어 가리는 것이 티끌 먼지 듯 마음은 스스로 고요하고 맑은데 물욕이 밖으로 유혹을 받는 다. 거울이 어둡게 가려져 있으면 거듭 닦고 문지르고자 하면서 마음이 어두워져 있는 것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니 이는 어찌된 까닭인가? 다름 아니라 하나의 욕심 한 글자(欲) 때문이다. 티끌 덮힌 거울을 갈아 닦으려는 욕심이 있으면 아마도 바깥을 꾸미는 결과로 되어 마음 스스로 닦이지 않고 그 하고싶어 하는 욕심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 이 거울을 갈아 닦는 일을 오직 영리하거나 어리석음을 비추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일 터이고 나의 한 마음을 갈고 닦으면 툭 터진 듯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바깥 것에 얽매어 오히려 그 본 바탕을 어둡게 하는가? 오, 이 머릿글을 쓰자니 더욱 그런 느낌이 일어나는 구나. 거울이야 티끌 먼지로 가려 덮이기 쉽지만 마음이야 환하게 비치도록 맑은 것인데 어찌 스스로 어두워지겠는가? 안으로 올바르고 밖으로 반듯하게 한다거나 맑아서 거울 같은 물과 같다면 참으로 어둡게 가려지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그것을 거듭 닦고 문지른다고 하는가?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또 한편 힘써 노력해야 하는 면이 있으니 은(殷)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은 성인이면서 날마다 새롭고 새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어찌 스스로 밝다고만 말하여 정성(誠)과 공경(敬)에 소홀할 수 있겠는가? 정성(誠)이란 것과 공경(敬)이란 것은 마치 수레바퀴와 같고 새의 날개와 같은데 아래로 밑 바닥에서부터 위로 꼭대기까지 사무치며 처음 시작을 이루고 마지막 끝을 이루는 것이다. 내가 이제부터 정성(誠)과 공경(敬)을 가지고 너를 갈고 닦는 돌을 삼으려하는데 이는 내가 생각해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인의 가르침이 밝게 남아 있음이니 나의 말이라 하지말고 성현께서 너에게 내려오셨음이라 하라. 만약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면 위로 창천(蒼天)을 등지게 될 것이니 아, 제왕인들 어찌 필부(匹夫)만 하겠는가? 번잡하고 화려하고 어지럽고 시끄러움을 제어하는 것이 더욱 어려우니, 그 욕심이라는 것을 제어하면 하늘의 진리인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경계하고 조심해서 그것을 굳세게 누르고 있으면 비록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일을 따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이 스스로 묶어 들어 충성스럽게 이 일에 힘쓸 것이니 어찌 다른 것들이 일어날 것인가? 윗대 여러 임금님들께서 부탁하시는 바는 오직 너 한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진리를 사색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근심이 있는 듯 두려워하는 듯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특히 이 글을 써서 태자에게 타이름을 내리니 바라건대 맏이인 너는 한 마음으로 이를 몸에 받아 익히라. 갑자(1744)년 음 삼월 초하루날 아침에 쓰노라.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경연, 홍문과, 예문과 춘추관 관심관 영사 세자의 스승 김재로(金在魯)가 임금의 교지를 받아 삼가 적는다. 어제 고경중마방 서

영조 임금이 퇴계 이황 선생이 엮어두었던 고경중마방을 출판하면서 덧붙인 머릿글이다. 앞으로 연재할 본서의 원문 파일을 찾다가 어느 블로거의 번역문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왔다. 영조 임금이 아마도 사도세자에게 쓴 글인 거 같다. 1744년에 작성하였으니 대략 사도세자(1735∼1762)가 10세 즈음인데 아버지의 마음이 자상하다.

그런데 그 아들을 18년 후에 죽였으니 이 글을 쓴 아버지의 마음도 그리고 죽음을 당한 아들 모두 마음 수양으로 정성스럽고(誠) 공경(敬)되게 갈고 닦지 못했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이 되버린 것을 탓해서 무엇할까? 사람 감정이 본래 원숭이와 말처럼 수시로 변하여 종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론과 현실 상황은 이렇게 다르다. 다만 이론과 현실 상황이 달랐음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함부로 비판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론과 실재가 한결같도록 마음을 갈고 닦아 길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나저나 영조 대왕의 글이 참 멋스럽다.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을 풀어쓰면 옛 거울을 거듭 갈고 닦는 처방이란 뜻이다. 고금의 유학자들이 남긴 좌우명이나 명문을 뽑아서 선비들의 지침이 되도록 한다는 마음 닦기 묘방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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