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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중마방]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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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거울을 거듭 갈고 닦는
전래의 묘방을 얻으니
밝은 거울은 해와 더불어
밝은 빛을 드러내어
우리 집 가는 길을 훤히 비추네
이제 더 이상 병주(幷州)를
고향이라 부르지 말게나.
古鏡重磨要古方
眼明偏與日淨光
明明直照吾家路
莫指幷州作故鄕
 
위의 시는 주자께서 임희지와 송별할 때 지어준 다섯 수의 시 가운데 한 수이다. 퇴계 선생께서 경계하는 글(箴)과 명심하는 글(銘)을 베껴 쓰시고는 이 시의 첫 구절을 취하시어 책의 표제로 삼으시고 책의 첫 머리에 실으신 것은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여기에 바탕을 두고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책을 펼치는 순간 이 책의 표제가 생겨난 경위를 앎으로써 이 책의 내용을 보다 깊이 음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력 정미 6월 문인 정구 삼가 적음(선조 35년, 1607년) 고경중마방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가 스승을 그리워하고 본받으며 이 책을 엮었을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면면히 유지된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글을 모아서 제자들이 기념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조선시대는 주자 성리학의 나라이다. 성리학이 공자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지만 불가와 도가의 사상을 끌어다가 창조적 변형을 만들었다고 보는게 옳다. 그런데 도가와 불가의 정신적 가치를 외면하고 도가와 불가의 야매 수행자들의 위선적 모습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현실 참여적 수양을 강조하다가 시대가 지나면서 참신함을 잃어버리고 성리학자들도 똑같은 매너리즘에 빠져 왕꼰대스럽게 되어버렸다. 옛 선비들의 정신에 유가이든 도가이든 불가이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마음은 물질처럼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으니 오리지날리티를 주장할 명백한 증거도 없다. 정신의 흔적은 물질처럼 자취를 남귀지 않는 데 화석처럼 쓰여진 문자쪼가리로 이게 원래 우리꺼라고 우겨서 무엇할까? 맙소사, 지금은 돈이 제일인 자본주의 시대이다보니 지적재산권까지 주장한다.

본래 형태도 없고 흔적도 없는 마음인데 그걸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하니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정신이 문자화 되는 것처럼 마음도 행동으로 드러나 세상에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다시 마음에 되새김하여 자리잡아 물질 세상(나의 몸과 사회)에 다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발전해 나가니 형태도 흔적도 없지는 않다.

그래서 불교에서 초자 성인의 경지에 접어든 수다원 혹은 초지 보살을 견해의 족쇄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모두 마음을 갈고 닦아서다.

거울 닦고 마음 닦음에는 절로 방법이 있으니
마음과 거울은 본디 밝고 빛나는 것이네
명도와 이천은 바로 바른 길이며
회암과 궐리는 곧 본향이라네.
磨鏡磨心自有方
曰心曰鏡本明光
明道伊川乃正路
晦庵闕里是本鄕
 
(주자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짓고 쓰다)

영조의 서문에 덧붙여진 시인데 조선이 성리학의 나라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명도, 이천, 주자(회암은 주자의 고향), 공자(궐리는 공자의 고향) 선생을 기념하였다.


고경중마방


영조 임금이 사도세자에게 쓴 서문 | 문인 임희지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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