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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121


three of swords와 忍.gif

그러나 한창 슬퍼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이 일어날때 자세하게 어느 곳으로부터 그 감정이 일어났는지를 헤아리고 찾아보십시오. 만약 그 감정이 일어난 곳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그러한 감정들은 또한 어느 곳에 있어서 찾아내겠습니까? 한바탕 그러한 감정에 젖어 있을 때 그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가짜인 것입니까? 진짜인 것입니까? 찾아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감정을 찾아내는 마음이 갈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거든 생각하시고 울고 싶거든 실컷 우십시오. 울고 또 울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무의식 속에 있는 허다한 회환의 감정들과 습기들이 모두 떨어져서 사라졌을 때 자연히 얼음이 녹아 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서 또한 '나'의 마음은 본래 슬픔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는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조계종의 간화선 시조인 대혜종고 선사의 서장을 읽다가 눈에 띄어 읽기 좋게 다듬어서 발췌하였다. 1000여년 전 명상 코치가 감정을 억누르며 명상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일러주는 편지글이다. 우리는 감각이나 감정이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 거마냥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어난 감정을 곰곰히 추적하여 살펴본다면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물론 그 감정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그놈 혹은 그년)은 바깥에서 온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 감정을 나에게 물건처럼 쓰윽 던져준 것도 아니니까 나의 마음 스스로 어디선가 뿅하고 나타났다가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것이니 없었던 것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된다. 한참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스스로 자학하는 셈이다.

참을 인(忍)의 한자가 '알아 냈다'는 뜻이란게 이해도 된다. 감정의 출처를 분명히 찾아도 없는데 나 스스로가 나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으니 인생 복잡하게 살고 있는 거란다. 그거 알지 못하니까 감정의 노예가 되서 영원한 웬수가 되어버린다. 웬수도 아프고 아프게 한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 년놈들과 나를 먼저 용서해야 겠다. 근데 용서하는 마음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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